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락다몬과 체어맨은 이미지를 다루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는 시도를 했다. 두 작가는 각자의 작업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익숙한 장면들이 다른 방식으로 보이는 순간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락다몬은 흐릿한 시선과 왜곡된 형태를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면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구성을 시도했다. 익숙한 이미지가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흐려지면서, 관람자는 그것을 다시 인식하고 해석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일상 속 장면들이 가진 낯선 감각을 드러내고자 했다.
체어맨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와 상황을 풀어내며 공간 안에 다른 리듬을 만드는 시도를 했다. 작가는 비교적 가볍고 직관적으로 보이는 장면 속에 작은 긴장이나 여운을 남기며, 단순히 지나쳐 보던 이미지들이 오래 머무르는 감각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서로 다른 두 작업은 한 공간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떤 작품은 익숙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긋난 감각을 남기고, 어떤 작품은 가볍게 보이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작가들은 이러한 구성 속에서 관람자가 작품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미지를 경험하기를 기대했다.
이번 전시는 특별한 설명 없이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을 지향했다. 작가들은 관람자가 작품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보고, 생각하고, 혹은 단순히 머무르는 경험 자체를 하나의 감상 방식으로 제안하고자 했다.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유리 튤립’으로 불리는 심해 멍게류 생물 ‘모굴라 페던쿨라타(Molgula pedunculata)’는 반투명한 몸체에 튤립과 흡사한 형태로, 심해 바닥에서 군락으로 발견되곤 한다. 동물임에도 모래 바닥에 뿌리를 내려 몸을 고정시킨 채, 해류에 따라 흔들리며 마치 심해의 꽃밭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는 이 군락을 인공 조명 없이 관망하기는 불가능하다. 반투명한 몸체에 인위적으로 빛을 비추어야 비로소 희미한 투명함을 마주할 수 있다.
인간에게도 정신적 심해는 존재한다. 타인과 소통하며 드러나는 생각과 달리, 타인이 절대로 알 수 없는 본인만의 ‘진짜 생각’. 인간은 모두 오로지 본인만이 알고 있는 지극히 폐쇄적인 생각을 자신의 심해 속에 보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세 명의 작가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들을 직면하고, 고찰하기를 시도한다. 폐쇄적인 의식으로의 의도적 접근을 통해 성찰 혹은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방한다.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정신적 심해로의 잠수와, 투명한 의식의 ‘모굴라 페던쿨라타’를 마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작가: 류지원 @rryuujjii_art 방서영 @se02b.art 엄경미 @raegang.w
기획: 엄경미
협력: 갤러리 지하
그래픽디자인: 류지원
25. 12. 08. - 25. 12. 14.
11:00 - 21:00
gallery JIHA, B1, 15, Seogang-ro 11-gil,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