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 전시는 일상적인 사물에 가해지는 작은 변화가 새로운 기능과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의자는 몸을 받치고, 조명은 빛을 비추며, 화병은 꽃을 담는다. 이미 익숙한 기능과 형태를 가진 사물들이지만, 구조나 비례, 재료, 사용 방식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없던 쓰임과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작업은 익숙한 사물의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유형을 관찰하고 그 안의 한 요소를 조금 다르게 다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구조를 바꾸거나 익숙한 요소의 위치를 옮기고, 하나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한다. 이러한 작은 개입은 때로 새로운 기능을 만들고, 기능의 변화는 다시 사물의 형태와 사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능은 형태를 제한하는 조건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도구가 된다. 기능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구조와 디테일은 사물에 예상하지 못했던 표정과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A WAY OF THINGS》는 이러한 기능과 형태 사이의 작은 변화를 통해 실용성과 조형적 즐거움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명, 화병, 스툴을 비롯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선보인다. 각각은 익숙한 사물에서 출발하지만 작은 변화를 통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사용된다. 《A WAY OF THINGS》는 새로운 사물을 발명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물 안에서 또 다른 쓰임과 형태를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에 관한 전시다.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유리 튤립’으로 불리는 심해 멍게류 생물 ‘모굴라 페던쿨라타(Molgula pedunculata)’는 반투명한 몸체에 튤립과 흡사한 형태로, 심해 바닥에서 군락으로 발견되곤 한다. 동물임에도 모래 바닥에 뿌리를 내려 몸을 고정시킨 채, 해류에 따라 흔들리며 마치 심해의 꽃밭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는 이 군락을 인공 조명 없이 관망하기는 불가능하다. 반투명한 몸체에 인위적으로 빛을 비추어야 비로소 희미한 투명함을 마주할 수 있다.
인간에게도 정신적 심해는 존재한다. 타인과 소통하며 드러나는 생각과 달리, 타인이 절대로 알 수 없는 본인만의 ‘진짜 생각’. 인간은 모두 오로지 본인만이 알고 있는 지극히 폐쇄적인 생각을 자신의 심해 속에 보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세 명의 작가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들을 직면하고, 고찰하기를 시도한다. 폐쇄적인 의식으로의 의도적 접근을 통해 성찰 혹은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방한다.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정신적 심해로의 잠수와, 투명한 의식의 ‘모굴라 페던쿨라타’를 마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작가: 류지원 @rryuujjii_art 방서영 @se02b.art 엄경미 @raegang.w
기획: 엄경미
협력: 갤러리 지하
그래픽디자인: 류지원
25. 12. 08. - 25. 12. 14.
11:00 - 21:00
gallery JIHA, B1, 15, Seogang-ro 11-gil,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