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 전시는 일상적인 사물에 가해지는 작은 변화가 새로운 기능과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의자는 몸을 받치고, 조명은 빛을 비추며, 화병은 꽃을 담는다. 이미 익숙한 기능과 형태를 가진 사물들이지만, 구조나 비례, 재료, 사용 방식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없던 쓰임과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작업은 익숙한 사물의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유형을 관찰하고 그 안의 한 요소를 조금 다르게 다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구조를 바꾸거나 익숙한 요소의 위치를 옮기고, 하나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한다. 이러한 작은 개입은 때로 새로운 기능을 만들고, 기능의 변화는 다시 사물의 형태와 사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능은 형태를 제한하는 조건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도구가 된다. 기능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구조와 디테일은 사물에 예상하지 못했던 표정과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A WAY OF THINGS》는 이러한 기능과 형태 사이의 작은 변화를 통해 실용성과 조형적 즐거움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명, 화병, 스툴을 비롯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선보인다. 각각은 익숙한 사물에서 출발하지만 작은 변화를 통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사용된다. 《A WAY OF THINGS》는 새로운 사물을 발명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물 안에서 또 다른 쓰임과 형태를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에 관한 전시다.
STANDARD FORM
현대 사회에서 사회화는 개인이 공동체의 질서 안으로 편입되기 위한 필연적 통과의례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순한 적응이나 성장의 단계가 아니라, 개체의 돌출된 지점을 지속적으로 마모시키며 차이를 제거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설정한 규격적 형식 안으로 수렴시키는 구조적 압력으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화를 자연스러운 발달의 서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반복되는 마찰과 규율, 그리고 보이지 않는 통제 장치들을 통해 개체를 점진적으로 균질화하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이때 사회는 개체를 보호하거나 성장시키는 환경이 아니라, 형태를 재단하고 표준을 강제하는 거대한 연마 장치에 가깝다.
원형 캔버스 위에 중첩되는 색의 띠는 양궁판이나 표적과 유사한 시각 구조를 형성하며, 끊임없이 중심을 향해 정렬되는 힘의 장을 드러낸다. 동심원의 반복은 단순한 기하학적 질서가 아니라, 개체를 일정한 궤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사회적 규범과 중심성의 논리를 시각화한 것이다. 이는 중심을 향한 수렴이 곧 안정이나 조화를 의미한다는 통념을 전제하면서도,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통제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회전과 마찰의 이미지는 개체가 사회적 규율 속에서 지속적으로 다듬어지고 削去(삭거)되는 과정을 암시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원형은 완결된 조화의 상징이 아니라, 반복된 마모 끝에 남겨진 균질화의 결과물이다. 즉, 그것은 차이와 저항이 제거된 이후에만 가능한 형태이며, 동시에 그 소거의 흔적을 내포한 형식이다. 결국 이 작업은 사회화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동질화의 장치를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소멸되거나 억압되는 개체성의 층위를 비판적으로 가시화한다. 원형은 완성의 도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규격화와 통제의 과정이 남긴 형식적 잔여물로 제시된다.
《STANDARD FORM》
작가: 정나영
Ph.D. 홍익대학교 미술학박사
M. F. A. 홍익대학교 미술학석사
B.F.A. 국립목포대학교 미술학사
2020 ACC_R 레지던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9 W 미술관 창작 레지던시, 익산
26. 02. 24. - 26. 02. 27.
12:00 - 19:00
gallery JIHA, B1, 15, Seogang-ro 11-gil,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