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도시는 역사, 제도, 환경 등 다층적인 층위에 의해 고유한 도시 형태(Urban Morphology)를 갖추며, 이는 DNA와 같이 물리적 조직 속에 흔적으로 각인된다. 건축이 도시적 맥락(Context)을 세밀하게 읽어내지 못할 때, 건축물은 주변과 단절된 채 독성을 가진 파편적 조직으로 전락한다. 본 전시는 도시의 유전자를 해독하는 방법론으로서 '슈태테바우(Städtebau)'를 소개한다. 이는 도시와 건축이라는 두 스케일 사이의 유기적 매개체로서, 건축이 도시라는 생태계 내에서 어떻게 상호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 그 실천적 방법론을 탐구한다.
슈태테바우는 개별 건축의 논리를 넘어 '도시의 시각'에서 건축을 계획하는 통찰을 의미한다. 도시의 흐름을 읽고 주변 도시 조직에 비해 모나지 않는 장소 중심적 배치를 통해, 건축이 점유한 '땅을 사용하는 방식'을 이웃과 공유한다. 여기서 계획 대상 건축물이 도시의 외부공간을 받아들이는 섬세한 방식을 통해 마당, 중정 등 건축물 내의 외부공간이 구획된다. 공적, 준사적, 사적 영역은 매우 간결한 건축물의 배치로 정의되며, 건축 스케일에서의 이러한 최적화된 단순한 볼륨들은 건축물의 미학적 완성도를 넘어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
결국 슈태테바우는 건축을 통해 도시의 시공간적 연속성을 연장하는 작업이다. 도시의 형태적 특징이 반영된 슈태테바우적 건축물은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운 필연성을 획득한다. 가로의 맥락과 도시의 공간 체계는 건축물 내부로 재해석되어 흘러들며, 이를 통해 도시공간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즉, 슈태테바우는 고립된 내부 공간의 완성보다 도시 외부공간의 활성화와 보행 환경의 구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실천적 태도이며, 이를 통해 건축물은 도시라는 생태계의 건강한 일부로 자리 잡는다.
외주 작업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는것도 다 좋은데, 어느덧 작가의 정체성은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먹고 사는 걸 생각하니 내가 누구인지 잊었나보다.
원대한 작업을 꿈꾸다가 결론이 나왔다. 3D 모델러로서 사는 현재의 나도 나라는 것을.
언젠가 조형 작업에 쓰려고 틈틈히 만들어두었던 3D 데이터를 불러와 의도적으로 형태를 일그러트리면서 나는 변용 중첩된 이미지들을 창조해 나아갔다. 이미지는 다시 음영화를 거쳐 3D 부조 데이터를 구축해 출력하였다. 각 부조에 담긴 형상에 굳이 큰 의미를 담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금 상기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의 작업물들은 그저 그렇게 있어야만 한다. 마치 내가 지금 이 길 위에서 그냥 서있는 것처럼.
3D 그래픽 디자이너와 소조 작가를 겸하고 있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느낀 바를 작업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moonraeb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