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프랙탈 밸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패턴들로 이루어진, 조금은 신기하고 조금은 장난스러운 세계다. 가까이 보면 복잡한 수학 구조 같고, 멀리서 보면 거대한 블록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무한 패턴의 골짜기 곳곳에는 작고 귀여운 생명들이 숨어 지내며 저마다의 모험을 펼친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상상의 공간을 탐험하는 하나의 여정이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 속에서, 만화 속 캐릭터 같은 작은 존재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하고,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용감하게 새로운 공간에 발을 디딘다.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구조물의 틈새에서 피어난 작은 꽃과 그것을 발견한 꼬마 탐험가는 이 전시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여기에서 프랙탈은 어렵거나 무거운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만화처럼 친근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기하학적 패턴과 귀여운 상상력이 함께 어우러진 하나의 놀이터가 된다. 무한한 구조 속에서도 작은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눈에 띄게 반짝인다.
무한한 패턴 속에서 작은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통해,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의 일상에 자리한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랙탈’도, ‘만화’도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상상력의 세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랙탈 밸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한 패턴 속 작은 모험이 곧 시작됩니다.”
외주 작업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는것도 다 좋은데, 어느덧 작가의 정체성은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먹고 사는 걸 생각하니 내가 누구인지 잊었나보다.
원대한 작업을 꿈꾸다가 결론이 나왔다. 3D 모델러로서 사는 현재의 나도 나라는 것을.
언젠가 조형 작업에 쓰려고 틈틈히 만들어두었던 3D 데이터를 불러와 의도적으로 형태를 일그러트리면서 나는 변용 중첩된 이미지들을 창조해 나아갔다. 이미지는 다시 음영화를 거쳐 3D 부조 데이터를 구축해 출력하였다. 각 부조에 담긴 형상에 굳이 큰 의미를 담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금 상기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의 작업물들은 그저 그렇게 있어야만 한다. 마치 내가 지금 이 길 위에서 그냥 서있는 것처럼.
3D 그래픽 디자이너와 소조 작가를 겸하고 있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느낀 바를 작업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moonraeb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