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예술을 비롯한 전반적인 전시 관람의 제1 목적은 중층적 경험을 향유하는 것에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일관적으로 작품을 독대하는 과정을 거치며 관람객들은 다른 이들과 차별된 푼크툼(punctum)을 겪을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내면의 무언가를 고취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술적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도 예술이 대중들에게 어려운 데에는 ‘저맥락(low-context) 문화’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명시적인 언어 기술 및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관련 지식을 습득하여 다양한 코드를 독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한정되었다는 특성은 스스로를 고급문화의틀에 가두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순수미술 영역에서 다루지 못하던 하위문화(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대중들에게 선사한다.

 작가의 작품이 전시될 전시장의 한 구석에서는, 그것이 무엇을 표상했는지 의심할 여지가 없이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간접적인 메시지를 통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다양한 코드를 자연히 이해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며 ‘고맥락(high-context) 문화’적 전시를 꾀한다.


 L.N.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의 예술론에서는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언어가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매체이듯이, 예술은 ‘감정을 소통하기 위한 매체’라고. 이어 감정의 소통을 그는 ‘감염’이라고 부른다. 즉 그에게 있어 예술 활동은 “인간이 남의 마음에 감염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동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지각자로 하여금 창작자의 감정을 공유하게 만들고, 상이한 지각자들이 서로의 감정을 나누어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예술론에서 제시한 감염의 요건 세 가지, ①독창성 ②(표현 방식의) 적절성 ③성실성을 근거로 하여 감정을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하에 존재하며 이것은 본능에 기인한다. 고로 개인은 사회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 즉 같이 이야기하고 대담, 협의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인격체로서 인정받는다. 이러한 의사소통 과정에서 감정을 나누는데 필요조건은 단연코 표정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표정은 학습된 게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문화와 관계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진화적인 기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물론 감정을 유추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의 맥락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기본 감정 여섯 가지인 기쁨, 공포, 혐오, 분노. 놀람, 그리고 슬픔을 눈치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무표정’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이 화두를 던지는 것이 작가가 작품으로 하여금 얘기하는 핵심 주제이다. 정색은 대개 심기가 불편하다든지, 무언가 반대한다는 의미의 부정적인 성격으로 해석된다. 심리적인 공격에 대한 방어기제로도 볼 수 있다. 인상에 따라 위압감이나 공포를 느낄 수도 있으며, 일종의 사전경고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표정을 바라보며 관찰자는 자신이 한 행동 등을 상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양상을 띠는 이유는 무표정을 해석하는, 다시 말해 타인의 감정을 알아내기 위해서라고 보이며,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에 장애를 느끼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작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표정이 감정을 감염시키는 데 있어 증폭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표정을 가진 캐릭터(페르소나; persona)를 작품에 삽입함으로써 톨스토이가 제시한 예술론에 충족 조건을 완수한다. 관람자들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해석하기 위해 공상하며 무언가를 상기하는 과정을 가질 것이다.


지난 전시조혜인 : 초화




전시소개
유일한 개별의 개인이 무의 존재로, 무명으로 바래져 되돌아가는 생의 순환. 바스러질 듯 연약하면서도 활짝 피워냄으로 생의 강한 원동력을 피력하는 존재. 계속되는 생과 사에 대한 고찰은 생명 순환이라는 자연에 빗대어 본질로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개인의 죽음과 사회상의 죽음은 하얗게 질린 그 색감들로 뿌리내려져 응어리를 대변했습니다.

과정 속 평평한 수많은 단어 중 상실, 죽음은 더 이상 종이 위 글자가 아닌 생경한 감정이 되어 체화되었습니다. 붓질의 유영으로 드로잉적인 터치의 생동하는 회화를 표현합니다. 비물질적인 주제인 생과 사의 흔적들을 신체에 투영하던 작업에 이어 현재는 식물의 자생력을 투영하여 삶을 관철하는 작업들을 잇습니다. 식물은 나를 빗대기도 우리를 은유하기도 하는 주체이자 객체가 되어 애도와 공감을 넘어서 삶의 의지와 원동력, 자생력을 피력합니다.


- 퇴색

存의 그러함이 퇴하는 찰나마다 바래지는 빛의 유한한 유희. 

매 순간 달아나는 색채를 붙들어 담아놓으려는 즉흥적 유희.

존재의 찰나, 그 찰나의 빛, 그 무엇도 멎지 못하다.


- 경계선

나의 공명을 파동하게 할 그 틈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의 역전화를 가능케 한 적시의 앎은 이와 같다. 여느 때와 같이 작업의 타개 방안 위한 실험 중 마주친 해방이라는 주제. 장악하는 뿌연 운무의 갇혀 공상하는 갈피, 모호한 그 실체의 경계선을 마주하고 해체하자 선명해지는 공명.



- 경계선에서의 해체와 해방

생과 소멸의 경계.

비물질을 투영한 물질의 경계.

동서양 장르의 경계.

무채색과 색채의 경계.

이상과 현실의 경계.

이성과 감성의 경계.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

은유와 직설의 경계.

사유와 무의식의 경계.

수많은 경계선 위에 서서 해방을 공상하다.


늘 경계선 위에 서서 양립할 수 없는 지점을 고뇌하고, 양립할 수 있기를 사유했다. 어느 것을 은폐하지 않으며 어느 것을 은폐할지 서성였던 그 투쟁의 과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되뇌며 더욱 치열한 담금질로 광활한 연마의 폭을 마주하고 싶다. 이러한 작업적 의식화는 매번 새로운 확장된 세계의 경계선으로 이끌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전시기간2022년 8월 16일(화) - 2022년 8월 22일(월)
운영시간12:00 - 19:00
참여작가조혜인
작가소개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hyerose_palette

전시장소
갤러리 지하 (서울시 마포구 서강로11길 15 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