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팽창하는 표면》은 물의 부피와 그 물리적 속성을 회화적 표면 위에서 다루는 작업으로 구성된다. 형태를 갖지 않는 물은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지 않지만, '팽창하는 표면'은 부피를 지니며 공간을 점유한다. 이 전시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물의 부피가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시장에 놓인 작업들은 평평한 캔버스를 기반으로 하지만, 더 이상 평면에 머물지 않는다. 구겨지고 눌리며 변형된 표면은 내부에서 작용하는 힘에 의해 밀려나고, 그 결과로 굴곡과 팽창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표면은 이미지를 재현하기보다, 압력과 밀도가 작용한 흔적을 드러내는 상태로 존재한다.
관람자는 작품을 ‘읽기’보다 ‘마주하게’ 된다. 표면 위에 드러난 형태는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지 않지만, 물이 지닌 부피와 흐름, 그리고 그것이 남긴 흔적을 물질적으로 환기시킨다.
이 전시는 평면과 부피 사이의 경계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표면 안에서 두 성질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상태를 제시하며, 회화가 물리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팽창하는 표면》은 보이지 않는 부피가 어떻게 표면을 통해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성된 형태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자리이다.
주우러 가는 길
《주우러 가는 길》
학교에서는 산 타며 식물을 배웠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표본을 만들기 위해 식물은 살아있던 장소에서 일부 혹은 전체가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종이 위에 눌리고 라벨과 함께 과거로 못 박힙니다. 대신 그 과거를 들여다 보는 누군가는 표기된 위치와 시간, 채집자의 이름, 식물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던 그 식물의 모습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표본에 기록된 위·경도 좌표로 그 식물의 원본을 찾아 다시 걸음하는 길은 불확실합니다. GPS의 측정 오차, 사람의 실수, 이미 원본 개체가 거의 죽었거나, 채집 이후 지형에 변화가 생긴 경우 등… 같은 자리에 그 식물이 그대로 자리할 때도 있고 아무리 헤매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많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림을 만드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첫발을 내딛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흔적을 향해 걷는 허탈했거나 뿌듯했거나 초라했던 짧고 긴 길의 여정에 주목하려 합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에서 식물을 채집한 표본으로 가장 초기 기록 중 하나를 뒤쫓아 부산항에 다녀왔습니다. 영국 왕립 식물원의 조수였던 찰스 윌포드(Charles Wilford)가 1859년경 한국의 거문도와 부산에 방문해 식물을 채집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의 표본들 중 내가 참조한 것은 그가 ‘Port Chusan’에서 채집했다고 기록한 머루의 한 종류(Vitis heyneana)입니다.
이재모피자가 먹고 싶은 친구와 어찌되었든 발로 산을 타야 할 것 같은 내가 만나 윌포드씨의 발자취를 어설프게 따라하는 여정이 있었습니다. 이미지와 좌표와 식물로 구성된 그의 표본에 다른 발걸음과 상념이 덧씌워진 160여 년의 간격이 있는 여정 속에서, 동일한 참조점(부산항의 머루)을 가졌지만 윌포드가 만든 기록과 내가 만든 기록은 다른 이름과 형태를 가집니다. 이 전시가 명확한 도착지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스치듯 떠오른 감각들이 각자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내기를 바랍니다.
《주우러 가는 길》
작가: 최시은 @rooibos_yogurt
주최/주관: 최시은
협력: 갤러리 지하
후원: 경기도, 경기도미래세대재단
* 본 전시는 2025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 선정 및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5. 09. 29. - 25. 10. 05.
12:00 - 19:00
gallery JIHA, B1, 15, Seogang-ro 11-gil,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