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언제쯤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사랑, 불안, 수치심, 평온과 같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을 마주한다. 감정을 이해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다루기보다, 감정이 있는 그대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제안한다. 작품들은 빠른 해석이나 명확한 메시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가 한 장면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에 조용히 접촉하도록 이끈다. 이 과정에서 불안과 수치심은 제거되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사랑과 평온으로 향하는 과정 속에 함께 존재하는 상태로 다루어진다.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감정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끌어안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내가 나를 끌어안는 방법, THE WAY I HUG MYSELF》는 스스로에게 다정해지는 연습을 위한 공간이다.
작가는 사랑과 불안, 수치심과 평온처럼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이미지로 탐구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설명되기보다 한 장면 속에 머무르며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작가의 작업은 감정을 해결하거나 교정하기보다 감정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작업 속에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몸, 텅 빈 공간, 반복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는 특정한 인물이나 이야기를 지시하기보다는 관람자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여백으로 기능하고, 감정과 조용히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유리 튤립’으로 불리는 심해 멍게류 생물 ‘모굴라 페던쿨라타(Molgula pedunculata)’는 반투명한 몸체에 튤립과 흡사한 형태로, 심해 바닥에서 군락으로 발견되곤 한다. 동물임에도 모래 바닥에 뿌리를 내려 몸을 고정시킨 채, 해류에 따라 흔들리며 마치 심해의 꽃밭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는 이 군락을 인공 조명 없이 관망하기는 불가능하다. 반투명한 몸체에 인위적으로 빛을 비추어야 비로소 희미한 투명함을 마주할 수 있다.
인간에게도 정신적 심해는 존재한다. 타인과 소통하며 드러나는 생각과 달리, 타인이 절대로 알 수 없는 본인만의 ‘진짜 생각’. 인간은 모두 오로지 본인만이 알고 있는 지극히 폐쇄적인 생각을 자신의 심해 속에 보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세 명의 작가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들을 직면하고, 고찰하기를 시도한다. 폐쇄적인 의식으로의 의도적 접근을 통해 성찰 혹은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방한다.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정신적 심해로의 잠수와, 투명한 의식의 ‘모굴라 페던쿨라타’를 마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유리 튤립의 그림자를 만나러 가요》
작가: 류지원 @rryuujjii_art 방서영 @se02b.art 엄경미 @raegang.w
기획: 엄경미
협력: 갤러리 지하
그래픽디자인: 류지원
25. 12. 08. - 25. 12. 14.
11:00 - 21:00
gallery JIHA, B1, 15, Seogang-ro 11-gil,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