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번 전시는 완성작 뒤에 숨겨진 ‘스케치(Sketch)’만을 모은 단체전입니다. 정교한 결과물 대신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한 날것의 선과 원초적인 밑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채웁니다. 수많은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예술가들의 고민, 열망, 그리고 영감의 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세요. 미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생동하는 생각의 에너지가 ‘그득그득’한 곳. 잠재력으로 가득 찬 이 사유의 공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번 전시는 완성작 뒤에 숨겨진 ‘스케치(Sketch)’만을 모은 단체전입니다. 정교한 결과물 대신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한 날것의 선과 원초적인 밑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채웁니다. 수많은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예술가들의 고민, 열망, 그리고 영감의 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세요. 미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생동하는 생각의 에너지가 ‘그득그득’한 곳. 잠재력으로 가득 찬 이 사유의 공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주우러 가는 길
《주우러 가는 길》
학교에서는 산 타며 식물을 배웠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표본을 만들기 위해 식물은 살아있던 장소에서 일부 혹은 전체가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종이 위에 눌리고 라벨과 함께 과거로 못 박힙니다. 대신 그 과거를 들여다 보는 누군가는 표기된 위치와 시간, 채집자의 이름, 식물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던 그 식물의 모습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표본에 기록된 위·경도 좌표로 그 식물의 원본을 찾아 다시 걸음하는 길은 불확실합니다. GPS의 측정 오차, 사람의 실수, 이미 원본 개체가 거의 죽었거나, 채집 이후 지형에 변화가 생긴 경우 등… 같은 자리에 그 식물이 그대로 자리할 때도 있고 아무리 헤매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많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림을 만드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첫발을 내딛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흔적을 향해 걷는 허탈했거나 뿌듯했거나 초라했던 짧고 긴 길의 여정에 주목하려 합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에서 식물을 채집한 표본으로 가장 초기 기록 중 하나를 뒤쫓아 부산항에 다녀왔습니다. 영국 왕립 식물원의 조수였던 찰스 윌포드(Charles Wilford)가 1859년경 한국의 거문도와 부산에 방문해 식물을 채집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의 표본들 중 내가 참조한 것은 그가 ‘Port Chusan’에서 채집했다고 기록한 머루의 한 종류(Vitis heyneana)입니다.
이재모피자가 먹고 싶은 친구와 어찌되었든 발로 산을 타야 할 것 같은 내가 만나 윌포드씨의 발자취를 어설프게 따라하는 여정이 있었습니다. 이미지와 좌표와 식물로 구성된 그의 표본에 다른 발걸음과 상념이 덧씌워진 160여 년의 간격이 있는 여정 속에서, 동일한 참조점(부산항의 머루)을 가졌지만 윌포드가 만든 기록과 내가 만든 기록은 다른 이름과 형태를 가집니다. 이 전시가 명확한 도착지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스치듯 떠오른 감각들이 각자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내기를 바랍니다.
《주우러 가는 길》
작가: 최시은 @rooibos_yogurt
주최/주관: 최시은
협력: 갤러리 지하
후원: 경기도, 경기도미래세대재단
* 본 전시는 2025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 선정 및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5. 09. 29. - 25. 10. 05.
12:00 - 19:00
gallery JIHA, B1, 15, Seogang-ro 11-gil,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