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 전시는 일상적인 사물에 가해지는 작은 변화가 새로운 기능과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의자는 몸을 받치고, 조명은 빛을 비추며, 화병은 꽃을 담는다. 이미 익숙한 기능과 형태를 가진 사물들이지만, 구조나 비례, 재료, 사용 방식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없던 쓰임과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작업은 익숙한 사물의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유형을 관찰하고 그 안의 한 요소를 조금 다르게 다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구조를 바꾸거나 익숙한 요소의 위치를 옮기고, 하나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한다. 이러한 작은 개입은 때로 새로운 기능을 만들고, 기능의 변화는 다시 사물의 형태와 사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능은 형태를 제한하는 조건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도구가 된다. 기능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구조와 디테일은 사물에 예상하지 못했던 표정과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A WAY OF THINGS》는 이러한 기능과 형태 사이의 작은 변화를 통해 실용성과 조형적 즐거움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명, 화병, 스툴을 비롯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선보인다. 각각은 익숙한 사물에서 출발하지만 작은 변화를 통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사용된다. 《A WAY OF THINGS》는 새로운 사물을 발명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물 안에서 또 다른 쓰임과 형태를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에 관한 전시다.
독
차가운 화형
《차가운 화형》
갓 엮어낸 꽃다발을 안아들 때에는 싱그러운 향기와 화려한 색감에 시선이 사로잡히지만, 더러는 서서히 시들기 시작하는 것을 다듬고 솎아 내면서 비로소 가려져 있던 꽃송이 하나하나의 기이한 아름다움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화병 속 흐드러지게 핀 꽃들엔 가볍게 꺾어 드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독성이, 거세게 일어난 파도 아래는 미처 구하지 못한 어린 동생이, 눈 덮인 크리스마스트리에는 집을 떠나간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는 노래가 숨어 있습니다. 새하얀 케이크엔 촛불 대신 향이 꽂혔고, 거울 너머의 고요한 밤바다 위로 흐릿하게 불길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설경을 걷는 아이들, 노을 지는 바다, 가지런히 꽂힌 꽃 등 익숙한 소재의 조합임에도 그림이 어쩐지 현실에서 동떨어진 듯 보인다면 그건 다시금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의 낮은 온도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가 눈으로 바라본 풍경 및 글과 소리의 형태로 받아들인 여러 화소가 한데 섞여 한 장으로 거듭난 그림은 어떠한 장면을 묘사할 뿐 이 다음이 어떻게 된다거나 하는 방향을 제시하지도,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요하지도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강렬한 색조 또한 관람자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며 때로는 난해하고, 어둡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맺어지지 않은 이야기는 전시명인 차가운 화형(花形), 즉, 제멋대로 자라나며 틀어지고 열리는 꽃의 형태처럼 어떻게 뻗어나갈지 모르는 가능성과 미래를 제시합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밤의 어둠은 오랜 공포인 동시에 지친 얼굴을 감추고 몸을 누이는 안식처가 되는 것처럼요.
그런 이상한 그림들을 모았습니다.
작가: 독 @username.dok
25. 08. 14. - 25. 08. 17.
12:00 - 19:00
gallery JIHA, B1, 15, Seogang-ro 11-gil, Seoul